남대문 시장의 번데기, 키타센주의 소고기덥밥

エッセイ

소년시절에 우리집안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자기 집을 가지지 못 하고
2년에 한번씩 전세기간에 종료되면, 이사한 기억이 있다.
국민학교 6학년 때는 옥수국민학교를 다녔는데, 졸업한 후 광희중학교에 입학하였다.

입학한지 머지않아, 상도동으로 이사하는데, 무허가주택이긴 하나,
전세집이 아닌 처음으로 구입한 상도동의 자기집으로 이사하게 된다.

이사후 전학을 하는데, 지금은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으나 그때 당시에는
전학을 희망하여도 즉시 새로운 학교에 이동되는 것이 아니라,
전학까지는 신청후 1개월이 소요되어, 그 사이에는 기존의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그리하여 1개월 동안, 상도동에서 응봉동까지 버스로 통학을 하게 되는데,
상도동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역 내지는 남대문 시장까지 가서 버스를 갈아타서 응봉동까지
가게되는데, 약 1시간 30분이상 걸린다.

한창 성장기에 중학교 1학년 소년은 방과후 남대문 시장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집에 가게 되는데, 배고픈 탓에 남대문 시장에서 팔고 있던 번데기를 사서
먹으려 하는데, 그 때 버스가 도착하여 먹는둥 마는둥, 그 번데기를 가방에 넣고, 버스를 타게 된다.

그런데 따끈따끈한 번데기의 냄새가 버스를 진동하여,
배고품은 한층 더해 지는데, 주변사람을 의식하여 먹지 못 하고,
버스가 집근처 버스정류장에 도착한 후 식어버린 번데기를 비로서 먹은 기억이 있다.
그런 1983년의 아주 아련한 아름다운 기억이 나에게는 있다.

이런 기억과 비슷한 상황이 2021년에 기타센주에서 이루어졌다.
오늘은 거래처 사람과 저녁식사를 한 후, 평소보다 조금은 늦은 퇴근을 하게 되었는데,
내가 알지 못 한 사이에 키타센주역안에 요시노야가 개점해 있었다.
오늘 나는 거래처 사람과 식사한 터라 시장기는 없었지만,
요시노야를 본 순간 집에서 혹시라고 출출하게 있을지 모르는 아이들을 생각하여
손십게 먹을 수 있는 소고기 덥밥을 2개 사서 지하철에 오르게 된다.

그런데 이 소고기덥밥이 지하철 안에서 1983년 번데기 역할을 재현했다.
구수한 소고기 덥밥 냄새가 지하철에 진동하였다.
역사의 재현, 숙스러움의 재현…
술기운이 있었던 탓에 1983년과 같은 부끄러움은 그다지 없었다.

집에 도착해 식탁위에 소고기 덥밥을 놓으니 우리 애들은 맛있게 식사해 주었다.

누구에게나 숙스럽고 불편한 과거사는 조금씩 있을 것이다.
번데기라는 음식도 세련되지 못 한 음식이지만, 예전에는 데이트 할 때도 포장마차에서 구입하여
산책하면서 남녀가 손십게 먹었던 음식이었다.

그러나 이 번데기가 누에고치라는 것을 알게되면 조금은 꺼리게 되지만,
하지만 그것을 알게된 후에도 나는 맛있게 먹고 있다.

모든 것이 선입견에 문제인 듯하다.
한국에 있을 때 일본에서 놀러온 일본 친구들에 억지로 번데기를 입에 넣은 적이 있다.
입에 넣었을 때 일본 친구들은 “아…. 벌레 먹었다”하고 싫어 했지만,
나는 번데기를 먹고 같이 웃고 짜증내는 일본 친구를 보며
몇 안되는 일본 번데기 친구가 생긴 듯 내심 기뻤다.

예전에 먹을 것이 부족했던 한국에서는 번데기는 단백질을 보충해주는 귀중한 음식임을
생각하면, 간식 내지는 술 안주로 먹는 지금의 번데기는 격세지감을 느끼게도 한다.

오늘은 요시노야의 소고기 덥밥으로 번데기의 추억에 잠긴 오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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